TIMELOG/flexitarian life (나이롱비건 이야기)

장마 일상, 아무튼 비건.

photoholicat♪ 2020. 8. 4. 10:50

 아기가 잠든 오전,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매일 습도가 75%가 넘는 요즘. 열대지방 스콜같은 비가 예고 없이 내리고, 하천이 범람하고, 밤이 되면 바람이 무섭게 분다. 바람이 잦아들면 소리치듯 울던 매미 소리에 귀가 얼얼하다. 

 일을 시작하는 시기가 조금씩 미뤄지고 있다. 여러 면접들을 보며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깨닫게 된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크고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꽤 순진하게 살아왔구나. 

 이슬아 작가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그 책에 소개된 cowspiracy라는 다큐멘터리도 넷플릭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비건 다큐멘터리 중에는 불편한 장면이 거의 없는 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상이 끝나갈 무렵 속이 좋지 않았다. 육류는 그 유해성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었지만 유제품, 계란까지도 환경과 생태계, 그리고 동물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주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식품으로 이용되는 동물에 대한 타자화가 내안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는지 깨달았던 지점은, 젖소였다. '젖'소라는 명칭부터가 철저히 인간중심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젖'소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늘 젖이 나오고, 그 우유를 짜서 얻는 것이므로 소에게는 큰 피해가 없을거라 두루뭉실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젖'이라는 것은 송아지를 낳은 뒤에야 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포유류의 생태를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심지어 출산한지 1년도 안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말이다.

 목장에서는 우유를 얻기 위해 젖소가 계속해서 임신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출산후 인공수정, 임신, 출산후 인공수정. 원래 평균 25년을 산다는 소들은 이런 끔찍한 사이클을 평생동안 돌다가 10년도 채 살지 못하고 도살장으로 끌려간다고 한다.

 갓 태어난 송아지들은 어미에게서 곧바로 분리된다. 암송아지들은 다시 '젖소'가 될 운명에 놓이고, 숫송아지는 근육이 발달하지 못하게 작은 케이지에 갇혀 고급 레스토랑의 '송아지요리'가 될 준비를 한다. 끌려가는 송아지의 뒤를 따라가다가 철창에 갇혀버린 어미소의 눈빛을 설명하는 대목을 읽는데, 옆에서 놀던 아기가 날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비건, 채식주의자는 특정 종교, 환경운동가들이나 급진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내 혀끝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에게 끝나지 않을 고통을 주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못 본 척 할 수는 없다. 알게 된 이상 눈을 감을 수 없고,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 아기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불편한 다큐멘터리를 보려고 생각 중인데, 마음 아플 것이 두려워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동물들이 실제로 겪었을 절망과 고통에 비하면, 눈한번 감았다 뜨는 수고일테니. 담담히 감수하고 직면해 보기로 한다. 

30대가 되고, 그 전에는 모르던 겁이 많아졌다.
부딪히는 일을 즐기던 20대는 갔지만, 그럼에도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는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