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보건이야기/대학원 이야기

보건대학원 3학기 중간정산.

photoholicat♪ 2023. 11. 22. 15:04
종종 수업시간 전에 일찍 신촌역에 도착할 때가 있다. 그럼 신촌 곳곳에 숨어있는 오래된 장소를 방문하는 재미가 있다. 미네르바 커피숍, 신계치 라면집 등등.. 옛날사람 다됐네ㅋㅋㅋ


3학기가 되었으니 여유있게 이틀 정도 나오면 되겠지 하는 나의 안일한 마음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필수, 전공 선택 과목 이수 조건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수강신청 스케쥴은 대실패. 5일중에 무려 3일을…! 꼬박꼬박 등교중이다.
하루에 하나의 수업만 듣긴 하지만, 왕복 2시간의 등하교길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래도 이번 가을에는 책과 좀더 가까워져서, 그 지루함을 수월하게 견디고 있다.

그래서 이번학기는 이렇게 세 과목을 듣고 있는 중.

국제보건과 사회문화 ii
- 1학기 신입생 시절 수강했던 사회문화I 의 좋은 기억에 아묻따 신청했던 강의.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며 (특히 이과생 기준) 토론수업은 쉽게 마주치기 힘든 경험이다. 머릿 속으로 생각하는 것, 글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확장을 가져다 준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을 읽어서 내 세계를 확장해 나가듯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 경험을 통한 다른 생각을 듣다보면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 문화인류학을 기반으로 여러 책, 참고문헌을 활용해 학생들이 발표와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준비하고, 다른 학생들이 각자의 의견을 나눈다.
성, 결혼, 가족, 죽음, 늙어감, 종교, 형평성, 불평등, genocide, 선진국의 복지제도, 디지털헬스 등등..
- 당연하고 익숙한 주제도 있었던 반면, 새로 알게되는 사실들도 많다. 익숙한 주제조차도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틀로 접근하니 새롭게 느껴지는 경험도 하게되더라.
그 안에 연관되어있는 역사나 철학, 인간성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해 볼 주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가끔은 그러면서 허무함도 느끼고, 무력함도 느끼고, 인간의 성악설에 대해 확신을 갖게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하면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 이번 가을, 나의 독서습관을 루틴화시켜준 일등공신 수업. 책 읽기도 하면 할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9월엔 한권, 10월엔 두권, 11월은 다섯권이나 읽게 되었다.  
-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인류의 기원,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진화, 사피엔스, 총.균.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빈곤의 종말.                                                                                    

의료법무기초이론
- 국시 준비하던 시절, 의료법을 외우는데 (이게 재미있을만한 내용이 아닌데) 난생 처음 암기의 재미를 느꼈다. 그때부터 왠지 법이 궁금하고, 한번쯤 공부해보고 싶었다.  
알아두면 실생활에 도움도 될 것 같은 마음이고.
- 역시나 너무 재미있다. 그런데 학문이 재밌는것과는 별개로, 의료인이 견뎌야할 의무감에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고의범 만을 처벌하는 다른 범죄와는 달리 의료는 인명을 대상으로 하기에 과실범도 엄중하게 처벌 받는다는 점, 연명치료중단, 수술/처치 동의(보호자와 법정대리인의 차이, 오해), 그 밖의 순간들에서 나도 모르게 법의 처벌을 받게 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은 바이탈과 의사들이 그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
- 간혹 판사들의 판결이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아 불만 가득한 댓글이 달려있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법을 배우며 괘씸한 것과 법적 판결은 정말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걸 알았다. 이미 법전에 명문화된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생각보다 그 폭이 넓지 않다는 느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은 이런 뜻이었구나.
- ‘등’ ‘또는’ ‘그리고’ ‘~만’  문장 사이의 조사, 어미, 전치사, 단어의 배치 순서에 따라 함의가 무척 달라지는 법률의 세계.. 정말 세밀하고 촘촘하구나 이 세상은.
- 수업을 들으며 가끔 로스쿨에 진학한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 mbti N의 망상..) 교수님께서 의사+로스쿨 졸업 하신 분이라 종강 전에 교수님의 동기나 경험을 여쭤보고 싶다.

보건통계학
- 학부때 분명히 배우고, 실습도 했었을텐데.. 지금 수업 내용이 심화인거겠지?.. 풀 집중해야 허덕거리며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수준.. t test, 카이스퀘어 검정, 비모수 검정, 회귀분석, 공선성… 머릿속에 이런 단어들이 동동 떠다니는데 아직 머릿속에 정리는 안되어있다. 내 인생에서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험기간에 제대로 정리해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 내용은 어렵지만, 교수님의 열정 강의를 듣고 있으면 죄송해서라도 ‘집중해야만 한다!!’ 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ㅎㅎ 교수님 감사합니다
- 전공의 석사과정때 이런 것들 하나 모르고 통계 돌리고, 표랑 그래프 그리고, 논문을 썼다는게 여러모로 놀랍고.. 부끄러워 지는 순간들이 많다. 졸국 전에 이런 것들을 잘 알고 다룰 줄 알았다면 논문 쓰는게 제법 재미있었을까? 그럼 혹시 내 진로도 달라질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0.01초쯤 하다가 머리를 흔들어 지워버렸다.
- 시험기간의 나야, 힘내… 할 수 있지?

  대학원에서의 시간도 절반을 넘어섰다. 이제 연말 느낌이 난다. 내년 연말이면, 내 인생의 큰 도전이었던 대학원도 끝나있겠네. 나는 그때 뭘 생각하고 있을까?
  요즘 여러모로 정신없고, 멍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대학원이 있어 내 삶의 중심이 잡히는 느낌이다.
이 여정이 끝나면 나는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이 나이가 되면 삶의 방향성에 당연히 확신을 갖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네.

이런 저런 일들로 조금 지친 요즘, 힘을 내서 이번 학기를 마무리해봐야지.
어느 한학기 버릴게 없는 보건대학원에서의 시간들. 역시 오길 잘했다.

지난 가을에 방문했던 msf팝업. 내가 저중 한 사람으로 활동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