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준비로 정신 없던 지난 학기 말, 대학원에서 이명근교수님이 운영하시는 NGO인 글로벌투게더와 함께 탄자니아 필드트립을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지 병원, 보건소 방문에 컨퍼런스일정, 사파리투어... 너무도 가고 싶었지만 육아문제에 이미 연차를 다 소진한 상황이라 마음 속 위시리스트에만 넣어두고 잊고 살고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인원 수가 적기도 하고, 듣는 수업이 겹쳐서 늘 하교를 함께한다. 그날 들었던 수업 내용에 대한 토론, 요즘의 일 이야기, 앞으로의 미래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 날의 주제는 탄자니아였다. 아프리카에서 수년간 의료활동을 한 경력이 있던 언니가 탄자니아 필드트립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집에 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깜깜한 소파에서 늘 고마운 남편에게 아프리카에 가고싶다고,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고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해주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다함께 떠날 날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조사라는 공식적인 명분(?)을 붙여주면서..ㅎㅎ
다음날 아침, 주최측에 필드트립에 늦게라도 합류가능하다는 답을 듣자마자 병원과도 잘 이야기를 했고, 12시간만에 탄자니아에 가는 일이 결정되어버렸다.
'아, 저질렀다...'
일상의 대부분을 느릿느릿 잔잔히 살아가다가 한번씩 이렇게 에너지와 의욕이 솟아오르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때가 찾아온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2학기를 마무리하고, 방학을 맞았다.
인천공항에서 장거리 국제선을 타보는게 얼마만인지..우리 학과 사람들과 교수님, 글로벌투게더 팀과 고신대 팀. 꽤 많은 인원이 모여 탄자니아를 향해 떠났다.
첫날은 잔지바르라는 탄자니아의 휴양도시(섬)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내 기준 (중)저소득 국가의 이미지는 '인도' 가 기준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깨끗하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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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트립동안 3개의 현지 병원과 두개의 보건소 시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다른 부분보다는 수술방과 ICU에 더 관심이 가더라. 설립시기나 지역, 지원주체에 따라 시설과 규모 격차가 상당히 컸고, NICU에서 엄마들이 모두 들어와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의료시설에서는 최근 최소한의 병원비를 받기 시작하면서 환자가 뚝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료로 진료해주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디선가 나타나고, 환자들은 그쪽으로 다 몰리고, 그럼 기껏 키워둔 인프라는 다른곳으로 유출이 되어버리는.. 탄자니아 의료인력과 시설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루는 다르에스살람 근교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건강기록부를 작성해주고,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기획해 진행했다. 탄자니아에서는 아직 학생들의 키, 몸무게, 시력, 건강상태를 기록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고 한다. 연세대-코이카 감염병대응 석사과정 학생중에 학교보건에 관심이 많은 탄자니아 의사가 있다고 해서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게 도와줄 예정이라고.
생각보다 일손이 부족해 체력적으로는 무척 힘들었지만, 돌아오는 길 참 뿌듯했다.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이 한참 마음에 남았다. 준비 과정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다음 기회의 보완동력으로 삼기로 다짐했다.
필드트립 내내, 이런 고민을 했다. 우리 가족이 여기 와서 살 정도로(나에게는 아니지만, 남편이나 아이에겐 희생일 수도 있는 일..) 내가 가치있는 일을 하게 되는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인가? 그런 의미에서 필드트립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더 둘러봐야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좀 피학적이라고 해야할까, 이상한 의무감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좋은 숙소에서 자고, 관광객스러운 일정을 수행하는게 왜 이렇게 안절부절 불편하던지.. 어렵게 얻은 일주일간의 기회를 잔뜩 고생하지 못하는것, 더 어려운 곳을 둘러보는데 쓰지 못하는게 그렇게 아쉬웠다. 마지막날 마사이족 마을에 가서야 전기도, 물도 없이 흙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얼굴에 파리가 수십마리 붙어있는 아이들을 깨끗히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데 하루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1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
국제보건 공부를 하면서 직접 발로뛰며 의료행위를 하는 필드(현장)와 현지 보건부와 소통하며 제도를 만들어가는 쪽 사이에서 조금 고민이 되었는데 이런 감정을 마주하며 나는 필드에 가야하나?.. 생각했다. 머리로는 시스템을 만들어 훨씬 많은 사람들을 커버할 수 있는 일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마음은 그 지지부진한 과정을 다 기다릴 수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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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이었나?.. 젊은이(?)들이 MBTI 이야기만 할땐 정작 내 타입이 뭔지도 기억못하다가 여행을 하면서 뒤늦게 MBTI에 과몰입하게 되었다. 서로의 MBTI를 이야기하다가, 국제보건 학생들 모두 N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현실주의자들은 절대 꿈꿀수 없는 학문인걸까..ㅎㅎㅎ 나와 MBTI 가 같은 3학기 선생님이 어릴때부터 비슷한 꿈/생각을 겪어왔다는 점도 너무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귀국하고 기억이 무뎌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려고 했지만, 다녀온 직후에는 오히려 멍-한 기분이 들어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 같기도 했고, 못다 보고온 아쉬움 같기도 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코로나를 앓았고.. 온가족이 아팠고... 그러다 달력을 보니 다녀온지도 한달 반이 지났다. 체감상 1년은 지난 기분이지만 사진을 꺼내보며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국제보건 일을 하겠다는 꿈은, 마음속에서는 참 뜨겁지만 밖에 꺼내 놓으면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가 된다. 아주 불확실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래서 가끔 스스로도 헷갈리곤 했다. 꿈에 '도달'하고 싶은건지, 그냥 꿈을 '꾸고만' 싶은건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꿈을 결과로서의 목표로 삼지 말고 과정으로 여기기로 다짐했다. 그걸 이루면 살고, 못이루면 죽는 게임이 아닌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비장해진다. 누가 시키지 않은 죄책감까지 느껴가며..
내가 상상했던 필드트립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길에 여러 단서를 얻을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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