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보건이야기/대학원 이야기

탄자니아에서 보낸 짧은 여름 방학.

photoholicat♪ 2023. 8. 22. 16:09

 기말고사 준비로 정신 없던 지난 학기 말, 대학원에서 이명근교수님이 운영하시는 NGO인 글로벌투게더와 함께 탄자니아 필드트립을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지 병원, 보건소 방문에 컨퍼런스일정, 사파리투어... 너무도 가고 싶었지만 육아문제에 이미 연차를 다 소진한 상황이라 마음 속 위시리스트에만 넣어두고 잊고 살고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인원 수가 적기도 하고, 듣는 수업이 겹쳐서 늘 하교를 함께한다. 그날 들었던 수업 내용에 대한 토론, 요즘의 일 이야기, 앞으로의 미래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 날의 주제는 탄자니아였다. 아프리카에서 수년간 의료활동을 한 경력이 있던 언니가 탄자니아 필드트립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집에 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깜깜한 소파에서 늘 고마운 남편에게 아프리카에 가고싶다고,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고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해주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다함께 떠날 날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조사라는 공식적인 명분(?)을 붙여주면서..ㅎㅎ

다음날 아침, 주최측에 필드트립에 늦게라도 합류가능하다는 답을 듣자마자 병원과도 잘 이야기를 했고, 12시간만에 탄자니아에 가는 일이 결정되어버렸다.

'아, 저질렀다...' 

 일상의 대부분을 느릿느릿 잔잔히 살아가다가 한번씩 이렇게 에너지와 의욕이 솟아오르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때가 찾아온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2학기를 마무리하고, 방학을 맞았다. 

인천공항에서 장거리 국제선을 타보는게 얼마만인지..우리 학과 사람들과 교수님, 글로벌투게더 팀과 고신대 팀. 꽤 많은 인원이 모여 탄자니아를 향해 떠났다. 

 첫날은 잔지바르라는 탄자니아의 휴양도시(섬)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내 기준 (중)저소득 국가의 이미지는 '인도' 가 기준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깨끗하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잔지바르 감옥섬에 사는 거북이들. 생각보다 정말 크다.
잔지바르 야시장에서. 이날이 이슬람 축제여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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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드 트립동안 3개의 현지 병원과 두개의 보건소 시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다른 부분보다는 수술방과 ICU에 더 관심이 가더라. 설립시기나 지역, 지원주체에 따라 시설과 규모 격차가 상당히 컸고, NICU에서 엄마들이 모두 들어와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의료시설에서는 최근 최소한의 병원비를 받기 시작하면서 환자가 뚝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료로 진료해주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디선가 나타나고, 환자들은 그쪽으로 다 몰리고, 그럼 기껏 키워둔 인프라는 다른곳으로 유출이 되어버리는.. 탄자니아 의료인력과 시설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코이카 예산으로 지어진 무힘빌리 병원 수술실. 각종 기구며 장비가 모두 새것이라 아산병원 로젯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병원과 달리 탄자니아의 병원은 1-2층 건물이 넓게 여기저기 퍼져있는 식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에서 설계, 시공을 하게 되면서 이런 고려가 부족한 채로 9층짜리 엘레베이터 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달 전기요금 지출이 어마어마하다는... 
병원투어중 갑자기 수술방을 보게 되어 멸균모자도 없이 들어간... 멀찌감치서 소아 Tonsilectomy 수술준비를 하는걸 구경하다가 그 병원의 유일한 마취과 의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한명은 병가 중이라고.. 여기 병원 좋다면서 일하러 오라고 하셔서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ㅎㅎ 먼 곳에서 만난 동종 업계 사람(?)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병원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잠시 상상해봤다.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약 앰플, 수액 통이 말랑한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있는게 인상적이었다. 온도, 보관문제 때문일까? 단가 때문일까?..

 

다르에스살람 근교도시의 병원. 병동회진 무리를 만났다. 실습학생들이 나오는 날이라 사람이 많다. 병동앞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우리나라 PK 실습학생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 재미있었다.

 

 하루는 다르에스살람 근교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건강기록부를 작성해주고,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기획해 진행했다. 탄자니아에서는 아직 학생들의 키, 몸무게, 시력, 건강상태를 기록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고 한다. 연세대-코이카 감염병대응 석사과정 학생중에 학교보건에 관심이 많은 탄자니아 의사가 있다고 해서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게 도와줄 예정이라고. 
 생각보다 일손이 부족해 체력적으로는 무척 힘들었지만, 돌아오는 길 참 뿌듯했다.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이 한참 마음에 남았다. 준비 과정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다음 기회의 보완동력으로 삼기로 다짐했다. 

초등학교 보건사업 진행중. 이날 정말 바빴지만, 행복했다. 아이들이 방긋 웃을 때마다 우리 아들 생각이 났다. 아이들의 마음과 마주칠때면 무척 힘이 난다. 공부할 기회를 얻은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더 행복해지는 법을 터득해 사회로 나왔으면.
아루샤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길, 창문으로 보이던 킬리만자로 산. 조용필아저씨 노래로만 알던 산을 직접 눈으로 보게되다니... 입을 와-벌리고 한참 구경했다. 너무 멀리서 본거라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히말라야 산맥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국 선교사님이 아루샤에 지은 비교적 큰 규모의 병원. 내과 의사선생님 한분이 산부인과, 외과, 비뇨기과, 등등 모든 환자를 다 커버하고 계셨다. 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척 인상적이었던 점은, 내가 모르는 분야의 케이스를 보는게 무척 스트레스풀 할텐데 무척 긍정적이어 보였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사람의 특징인지, 아프리카 사람들 특유의 긍정성인지.. 궁금하다. 방문하는 현장마다 내가 여기 있었다면? 하고 묻게 되었다. 

 

아루샤의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학교에 위치한 도서관. 여행 가기전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이라는 영화를 보고왔는데, 그 아이의 시작에 학교 도서관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로 나와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작은 공간이 탄자니아의 어떤 아이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개성넘치는 표정과 모양의 아프리카의 가면. 가게에 가면 팅가팅가라고 불리는 비비드한 동물화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사파리에서 가장 가까이, 많이 보이던 얼룩말. 흑백의 구분이 너무 쨍해서 눈이 부실정도였다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국립공원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그림으로 공항 곳곳이 장식되어있었다.

 필드트립 내내, 이런 고민을 했다. 우리 가족이 여기 와서 살 정도로(나에게는 아니지만, 남편이나 아이에겐 희생일 수도 있는 일..) 내가 가치있는 일을 하게 되는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인가? 그런 의미에서 필드트립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더 둘러봐야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좀 피학적이라고 해야할까, 이상한 의무감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좋은 숙소에서 자고, 관광객스러운 일정을 수행하는게 왜 이렇게 안절부절 불편하던지.. 어렵게 얻은 일주일간의 기회를 잔뜩 고생하지 못하는것, 더 어려운 곳을 둘러보는데 쓰지 못하는게 그렇게 아쉬웠다. 마지막날 마사이족 마을에 가서야 전기도, 물도 없이 흙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얼굴에 파리가 수십마리 붙어있는 아이들을 깨끗히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데 하루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1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

 국제보건 공부를 하면서 직접 발로뛰며 의료행위를 하는 필드(현장)와 현지 보건부와 소통하며 제도를 만들어가는 쪽 사이에서 조금 고민이 되었는데 이런 감정을 마주하며 나는 필드에 가야하나?.. 생각했다. 머리로는 시스템을 만들어 훨씬 많은 사람들을 커버할 수 있는 일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마음은 그 지지부진한 과정을 다 기다릴 수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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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이었나?.. 젊은이(?)들이 MBTI 이야기만 할땐 정작 내 타입이 뭔지도 기억못하다가 여행을 하면서 뒤늦게 MBTI에 과몰입하게 되었다. 서로의 MBTI를 이야기하다가, 국제보건 학생들 모두 N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현실주의자들은 절대 꿈꿀수 없는 학문인걸까..ㅎㅎㅎ 나와 MBTI 가 같은 3학기 선생님이 어릴때부터 비슷한 꿈/생각을 겪어왔다는 점도 너무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귀국하고 기억이 무뎌지기 전에 기록을 남기려고 했지만, 다녀온 직후에는 오히려 멍-한 기분이 들어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 같기도 했고, 못다 보고온 아쉬움 같기도 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코로나를 앓았고.. 온가족이 아팠고... 그러다 달력을 보니 다녀온지도 한달 반이 지났다. 체감상 1년은 지난 기분이지만 사진을 꺼내보며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국제보건 일을 하겠다는 꿈은, 마음속에서는 참 뜨겁지만 밖에 꺼내 놓으면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가 된다. 아주 불확실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래서 가끔 스스로도 헷갈리곤 했다. 꿈에 '도달'하고 싶은건지, 그냥 꿈을 '꾸고만' 싶은건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꿈을 결과로서의 목표로 삼지 말고 과정으로 여기기로 다짐했다. 그걸 이루면 살고, 못이루면 죽는 게임이 아닌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비장해진다. 누가 시키지 않은 죄책감까지 느껴가며.. 

내가 상상했던 필드트립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길에 여러 단서를 얻을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