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보건이야기/대학원 이야기

2022 보건대학원 1학기를 앞두고.

photoholicat♪ 2022. 8. 26. 16:15

첫 수업이 보름쯤 남았다.
보건대학원에 지원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왜 난 이 꿈만 생각하면 이토록 가슴이 뛰는지 찬찬히 떠올려 봤다. 나는 아주 인정이 많은 사람도, 공감능력이 넘치는 사람도 아닌데. 멀리 돌아갔다가도 나의 경로는 결국 이 곳으로 향하고 있다.

- 매 수업이 기다려지던 예방의학 시간. WHO, 국경없는 의사회 등 국제기구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선배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곱씹으며 해가 뜨는 열람실을 지키곤 했다. 자꾸 궁금하고, 꿈꾸고 싶어졌다. 나는 이런 일에 끌리는 사람이구나 알게되었다.
- 돈, 명예 같은 세상의 즐거움 다 좋지만. 나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 보았을 때,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었다. 죽기전에 후회없이 내 마음을 꽉 채우는 걸 찾겠다고 다짐했던 20대의 어느 날.
- 나의 자아상이 모두 무너져 내렸던 1년간의 인턴시절을 마치고 나니 그저 몸이 편해지고 싶어졌다. 체력이 무너지니 멘탈이 따라주지 않는 스스로에게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GP단기 알바와 여행을 번갈아가며 한량 생활을 하다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라 인도로 떠났다.
3년전 인도 선택실습을 하며 신세를 졌던 친구집도 찾아가고, 그의 시골 집도 찾아가 아기도 돌보고, 소젖도 짜고 농사도 돕고... 얻어 먹은 밥만 몇끼인지. 시골 인심은 인도도 어찌할 수 없구나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야간버스를 타고 네팔 국경을 지나, 포카라로 넘어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몇 일 이 도시에 적응한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매일이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트레킹 10일차 정도 되었을까,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감격스런 맘으로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 네팔 대지진을 만났다. 새 떼가 시끄럽게 날아가고, 마을을 잇는 전기줄이 단오 그네처럼 출렁거리더니 이내 바닥이 흔들렸다.
- 부서진 집과 마을, 등반을 중단하고 급히 내려가는 셰르파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분주히 오가는 헬리콥터. 어느 숙소 식당에 홀로 앉아 하루종일 바라보고, 바라봤다. 당연한 평화는 너무도 갑작스레 깨질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여진이 계속되었다. 벽에는 금이 가있고 천장의 흙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밤새 깔려 죽을까? 살 수 있을까? 두려움과 안도를 몇 일 반복하다 보니 그것도 이내 익숙해졌다.
- 예정보다 일찍 인도로 가기 위해 카트만두로 이동했다. 여기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광장에서 생활하던 한 가족에게 트레킹을 위해 챙겨갔던 침낭과 파카를 건네주었다. 공항은 혼란스러웠고, 구호단체들이 속속 도착해 캠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더욱 발걸음을 재촉해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무기력하고, 부끄러웠다. 아직도 이 날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 '국경없는 의사회 긴급모집' 이라는 공지글을 보면 '마취의, 외과의, 산과의'는 늘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다. 마취과 자체의 매력 때문도 있었지만, 국경없는 의사회의 공지사항 한줄이 내 진로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 임상의로써 환자들 하나하나를 살리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었다. 건강한 시스템을 만들어 그것을 잘 돌아가게 하는 법. 그런데 맨 손으로 뛰어들기엔 아는게 너무 없었다.
- 아이가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이를 넘어서면 떠나자. 하는 핑계 아닌 핑계와 모르는 분야에 겁없이 뛰어들기 싫은 완벽주의가 맞아떨어져 대학원까지 생각하게 된 것.
- 입학식 겸 오리엔테이션에서 동기들을 만나서 개인의 한계와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나눌 때 약간 소름끼칠 정도로 반가웠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구나. 이 사람들과 앞으로 나눌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나면 내 생각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궁금하다.
내가 진짜 이루고 싶은 건 봉사, 인류애 같은 것일까 아님 결국 자아실현일까. 둘중 어떤 것이든 뭐가 중요한가 싶기도하고. 이런 뜬구름잡는 생각을 하다가 배고프다는 아이의 말에 저녁식사 준비를 하며 퍼뜩 현실로 돌아온다.
어찌됐든 가슴 뛰는 일이 있다는 건 무척 벅찬 일이고
그 시작을 앞두고 있는 요즘,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