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OG 26

경험예찬론

2014. 7. 20 경험을 찬양했던 시절이 있었다 후배들에게 삶의 역동성이란 살면서 마주치는 순간들의 총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길 목에 핏대세워가며 이야기하곤 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피상적이고 순간적일수 없는게 또 경험이구나 싶어 회의가든다. 나의 그시절이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더 내려놓고 겸손해져야겠다

7월, 강릉 응급실에서

얼마간의 서울 근무 후에 다시 강릉파견을 오게 됐다.3개월, 만이다. 조금 더워진 날씨를 제외한다면 모든게 그대로있었다. 정겨운 강원도 사투리, 기숙사 특유의 냄새, 아담하지만 있을것 다있는 병원.누가 해도 지장없는 잡무만을 맡아오던 지난 몇개월을 생각해볼때, 요즈음은 그래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있다는 기분에 맘이 뿌듯하다. 곧 성수기가 시작되면 로딩이 무섭게 늘겠지만, 그동안 내공을 키워놓으면 할만은 할 것 같다.나름의 재미를 찾으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 오프가 확실한 것, 의국분위기가 좋은것,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급성기를 넘기면 내손을 떠난다는것외에도 응급의학과의 좋은점을 하나더 발견했다.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24시간 바라게 된다는 점 ㅎㅎ 부디 평안하길!

세월호.

외래 예진을 보러 1층으로 내려왔다. 걸어가는길에 뉴스 속보가 나온다. 남해에서 배 한척이 가라앉았단다. 다행히 대부분 구조가 완료되었다고. 그래도 다행이다. 얼른 다 빠져나와얄텐데. 무심히 생각하며 다시 갈 길을 갔다 일과가 끝나고 다시 뉴스를 읽는다. 아까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배 속에 갇힌 아이들이 아직 너무 많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다. 사람들의 말만 많았고 달라진것은 별로 없었다. 서서히 구조에 대한 희망은 사그러들고 언론은 책임소재 파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보도를 위한 보도라는 기분을 지울수는 없다. 산 사람은 살아남았음을 온전히 기뻐할 수 없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오늘은 날씨도 참 쌀쌀하고, 흐리다. 대한민국이 참 슬픈 날이다. 세..

인턴 시작 :)

MICU로 시작한 일정. 4일째다. 처음이라 하루가 일주일만같다. 아직 주말이오지않았다는게 도저히 믿기지않음!! 술기는 생각보다 손에 익고 있는 중이지만 죽음이 좀더 흔하고, 그럴수 있는 일으로 여겨지는 ICU에서 자꾸 마주치는 환자의 마지막모습은 아직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해서 무뎌지기도 싫은데. 매번 눈물 흘리는일도 스스로에게 힘든일인것 같고.. 딜레마다 어쨌거나 그분들이 계실때 맡은일을 열심히, 해내고 말한마디(인공호흡기를 하고있어 대부분 말씀을 못하고계시긴 하지만) 몸짓하나를 존중해 드리고 싶다. 그저 환자로만 느껴지던 분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그들의 건강이 여러사람을 울고웃게한다는 사실을 면회시간마다 되새긴다. 아직은 사회인이자 전문의료인이라는게 스스로 잘와닿지않아 어리벙벙한 순간..

2014년 2월 열두번째 날에.

이틀간의 강의 오리엔테이션, 이틀간의 연수, 그리고 시뮬레이션+전산교육까지. 장장 7일간의 준비가 오늘로 끝이 났다. 일수를 다 채우는 것과 완전한 준비가 되는 것은 분명 별개의 문제겠지만 어쨌거나 후련하다. 오늘 아침 출근하며 다리를 건너는데 스산하고 무채색으로 칠해진 서울 특유의 풍경이 눈에 들어와 기분이 묘했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아직은 꿈같다고 나도 몰래 믿고 있었나보다. 그 마음을 들켜서 내가 나에게 놀라고 만게다. 지난 신체검사결과 A형간염 항체가 없다기에 왼쪽 델토이드에 주사를 맞아야 했다. 어릴 땐 엉엉 울면서 겨우 주사하나를 맞고서 어른들이 되면 하나도 안 아프게 되는 걸까, 그렇담 어른이 되는건 좋은일이구나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든 안먹든 아픈건 아픈 거였다. 뻐근한 근육을 겸연쩍게 ..

인턴을 앞두고..

국가고시가 끝난지도 한달이 지나간다. 몇번의 여행, CMF 수련회, 설, 친구들. 정신없이 흘러갔던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고나. 지난주엔 면접을 봤고, 다음날 갑작스럽게 합격소식을 접했다. 누군가는 기쁜 목소리로, 혹은 힘없는 목소리로 주위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렸겠지. 다섯살.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기억이 시작되는 나이다. 21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니 선뜻 내세울만한 무엇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어쨌건 이제는 출발선 위에 서있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2주 전 일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버스를 타고가다 이름 모를 강이 흐르는 걸 본적이 있다. 꽤 세차게. 사람의 일은 강물 같아서 어느 지점을 벗어나면 개인의 의지, 행동같은 것과 무관하게무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