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India 2013

[Clerkship in INDIA]6. 첫 출근!

photoholicat♪ 2015. 5. 22. 19:14
2013. 1. 31


정식 아침 출근 날이 밝았다. 
어제는 밀려드는 졸음을 견디지 못해 하려던 공부를 옆에 밀쳐두고 잠이들었다. 이것을 아침에라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모니카와의 수다타임을 즐기느라 실패ㅜㅜㅋㅋㅋ 
 어쩔수 없이 서둘러 나갈준비를 했다. 모니카는 결혼식을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섰고 10여분 후에 나도 출근길에 올랐다. Lucky!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왔다. 마치 1-2년쯤 이곳에 살며 출근을 하는 사람처럼 나는 태연하게 차장에게 10루피를 건네고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온지 고작(?) 5일째. 나는 이곳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병원에 도착해 서둘러 가운을 갈아 입고 세미나실로 들어갔더니 벌써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고 있었다. 꽤 풍채있으신 여자교수님이 한 쪽에 앉아 레지던트의 발표를 듣고계셨다. 아미 교수님은 내분비내과 과장을 맡고 계신분으로 척봐도 교수님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지만 부드러운 포스의 소유자셨다. 선생님께 나를 간단히 소개하고 레지던트의 환자 프레젠테이션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은 우리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제보다 영어듣기 실력이 조금더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 쑥쑥자라라 내 영어실력!! 후후 
 그리고 하나 더! 편안하다고만 생각했던 외국의 학생-교수관계는 의대에서만큼은 예외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사리타가 차왈라 교수님과 대화하던 분위기와 오늘 레지던트와 교수님간의 분위기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미소를 머금은 채 회진을 돌던 레지던트들의 모습을 보니 나는 어쩐지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발표 중간, 교수님께선 내게 차트하나를 주시고는 이 환자에게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오라고 하셨다. 차트를 간단히 살펴보니 이 환자는 Pituitary microadenoma를 가진 ACTH dependent cushing sd 아주머니로 당뇨에 고혈압, CKD, 갑상선기능저하증까지... 과거력이 무척 다양한 분이었다. 게다가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두번이나 받으신 과거력또한 있었다. 병실로 들어가 환자의 증상, 병력, 경과 등을 물어보았고 환자 보호자는 무척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moon face, 부종, 두통, 시야장애, 근력약화, 요통 등등... 쿠싱을 일으키는 뇌하수체 종양의 특징적인 양상을 모두 나타내는 환자를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난해 내분비내과 실습에서 내가 본 것은 당뇨, 당뇨 그리고 갑상선 뿐이었지.. 새삼 이곳에 온 보람을 느껴 맘이 벅찼다.
 그러고 보니 작년 2월 즈음, 내게 처음 배정된 말기 간암 환자에게 찾아가기 전, 병실 문 앞에서 덜덜 떨던 내모습이 생각난다. 지난 일년은, 분명 나를 많이 자라게 했나보다. 이젠 별 고민도, 긴장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 모든 과정을 해내는 나를 보니ㅎㅎ

교수님은 레지던트들에게 가장 가능성 높은 질환부터 생각하는 법, 여러 질환 카테고리에서 환자의 병력을 중심으로 감별진단 하는 법,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진단에 접근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불필요하거나, 침습적이거나 너무 비싼 검사는 최대한 지양하며 핵심을 짚을 것을 강조하셨다. 간간히 레지던트들이 환자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우리 교수님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나무라는 말씀도 하셨다. 나를 위한 배려인지는 알수없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어는 빠르지않고 정확해서, 나는 거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은 특히 쿠싱증후군과 유전양상을 보이는 골연화증 두가지 질병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는데,  
교수님의 질문은 레지던트들이 언급한 진단과정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내었기 때문에 똑똑한 그들조차 자주 당황하는 것 았다. 중간에 책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골연화증은 그리 흔하지않은 질환이기 때문인지, 파워에는 이것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골격이상을 보이는 이 환자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서도 다리 뼈의 변형이 관찰되었다. 이것은 아마 인도에서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케이스인 것 같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내일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한 뒤 점심시간이 가까워서야 회진과 프레젠테이션이 마무리 되었다. 교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셔서 그때마다 나는 힘이났다. 나도 나중에 교수가 되면, 저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되고싶다. 내일은 8시부터 산부인과 교수님을 초청해 임신성 당뇨에 대한 강의가 있다고 한다. 강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졸린 눈 비비고, 귀를 열고 열심히 들어봐야겠다. ^.^ 의학공부하는 일을 설레게 만들다니. 인도는 분명히 엄청난 나라가 분명해. 

점심시간, 닐람선생님이 나를 위해 도시락을 하나 더 싸주셨다. 너무너무 감사했지만 어쩐지 그곳에서 나는 자꾸 수줍은 동양인이 되는 것 같다. 겨우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뒤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점심시간 후 외교부 승인문제로 학교 사무실을 찾았다. 샤르마씨는 3시반 이후에 오면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갈곳이 없어진 나는 남자 기숙사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사실 이 일기도 여유시간에 쓴거!)

 돌아가는 길, 신발이 너무 아파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겨우 걷고 있는데, 가운과 청진기를 걸친 한 여자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신경과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흔쾌히 이를 수락하고나서 그녀는 대학 건물, 신경과 외래동 등을 나에게 구경시켜주었다. 그녀의 나이,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 때 진짜 의사가맞나?하고 의심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을 앞두고 너무 농땡이를 피우면 안될 것 같아 다시 병동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열고 드러가 차트를 읽고, 환자번호와 진단명을 매칭시킨 쪽지 하나를 만들고나니 벌써 다섯시반!

룰루랄라 즐겁게 퇴근을 하는데, 네하가 오늘 집으로 놀러오겠다고 했다. 마침 아무도 없는 방이라 쓸쓸했었는데. 참 고마웠다. 우리집주변에는 구멍가게같은 것 뿐이어서 미니밴을 타고 몇일전 갔던 큰 시장으로 갔다. 그곳은 네하의 집이있는 곳이라고 했다.

 뿌리(속이 빈 튀김에 구멍을 뚫고 그안에 신맛의 소스를 넣어 한입에 먹는 길거리 간식)를 먹고, 과일과 형광펜도 사고나서 네하네 집으로 갔다. 내가 도착한 시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진 방안엔 2명의 룸메이트가 더 있었다. 엊그제 생일을 맞아 받은 꽃다발과곰인형이 인상적이었던 친구와 한국드라마,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던 또 한명.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여러가지 주제에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완벽한 영어는 아니지만, 어느순간부턴 별 무리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을 보면 사람간의 소통에 형식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저녁메뉴는 식전짜이와 칠리커리, 짜파티! 밥!
짜파티를 굽는과정(팝! 부풀어오르는때가 있는데 이게 참 신기신기)을 포함한 요리과정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침대에 신문을 깔고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옹기종기. 한국에선 자주 느끼지 못하는 따뜻함이었다. 
 침대 옆 네하의 거울엔 남동생이 써준 편지가 붙어있었는데 넓은 세상에 나가서도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라는 응원메세지였다. 작고 허름한 방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꿈들이 자라간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모습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늦은 밤, 빈 방으로 돌아와 혼자 잠을 청해야 했지만 어쩐지 나는 혼자인 것 같지 않았다. 
 인도에서의 시간들은 나에게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것들을 선물해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