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후배들에게 선물 받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중에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한줄씩 읽어 나갈수록 뇌와 눈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고 (ㅜㅜ 수양이 더 필요하다)
'피츠제럴드 단편선'은 도무지 당시 미국의 분위기에 이입할 수 없어 너무 지루했고
(런던스케치는 건조한 스토리의 나열이어서..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받은거지? 영어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일까?)
이 책은 '연극 대본'이라는 형식이 낯설어서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잠이 오지 않던 어느밤, 단지 두께가 얇다는 이유로 꺼내 들어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앞서 생각했던 이유들도 내 오해일 수 있으니 시간 날때 꼭 재도전해보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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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의 일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 언덕에서 왜 서있는지, 누구를 기다리는지 계속해서 잊으며,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등
지남력과 기억력이 조각난 듯한 두 주인공을 보면서, 처음엔 치매 노인들인가 싶었는데 등장인물 모두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극 중의 세계는 다들 그렇게 살아갔던가보다. 혹은 그렇게 살아야 그나마 미치지 않고 살수 있었거나.
스토리와 인물관계를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하나의 스토리를 읽고 있지만 이야기는 여러가닥 실처럼 풀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지는 기분이었다 ㅠㅠ
기약없어도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는 '고도'의 속뜻이 무엇인지 작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당시 시대 상황으로는 종전과 평화. 같은 것을 의미했다고 하던데, 고전이 빛나는 것은 어느 시대에 적용해도 가치를 잃지 않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삶에도 틀림 없이 기다려야할 '고도'는 있다. 하지만 나라면 '내일 고도가 올 것'이라고 알리는 심부름 소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다.
소년에게 그를 직접 찾아가 만나겠다고 길을 안내해달라고 말해보았더라면.
겁에 질린 소년이 그럴 수 없다고 달아나더라도 숨이 터지도록 쫓아가 보았더라면.
늙고 약해진 것은 그들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매일 조금씩의 희망을 품고 언덕을 오르는 두 노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무기력하고 낡아빠졌대도, 놓지 않고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힘든 일이니까.
급격히 늙어가는 내 마음에 안티에이징크림 듬뿍 발라준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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