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India 2013

인도에서 보내는 첫번째 편지.

photoholicat♪ 2013. 2. 9. 06:27
수동 컨베이어벨트위에 영상필름을 올려두고 돌려가며 판독을 하는 영상의학과 선생님들. 컨퍼런스도 이것에 연결된 카메라를 프로젝터로 쏘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Time flies. 처음 이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이것을 몸으로 느낀다.
델리 지상에 착륙할때의 덜컹거리던 느낌. 룸메이트들과 꾸뜹미나르에 다녀온 주말. 모든 것이 방금 전 일처럼 생생하기만 한데.. 어느새 금요일이 찾아왔다. 그것도 두번째 맞는, 다시 없을 AIIMS 병원에서의 금요일.
빠르게 스쳐지나는 순간들이 참 아쉽지만, 그렇기에 순간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이곳의 사람들과 열심히 소통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다.

오늘은 차트만 보고 있기가 답답해 환자들의 혈압을 재러 다녔다. 차트에 기록되는 것도 아니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환자들과 눈을 맞추고, 웃고, 혈압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혈압을 재고 병실을 나서는 나에게 12번 침대의 아주머니도 수줍지만 밝은 웃음을 건넨다. 격리병실에 있는 환자 어머니는 이제 복도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잔잔한 미소를 짓고, 내분비병동 문지기 아저씨도 이제 출근때마다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처음 실습을 시작할때 마음먹었던 것에 비해 학문적인 공부는 많이 하지 못했다. 어쩐지 영어실력도 마음처럼 늘지 않아 고생도 했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지식대신 이곳의 사람들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아가는 중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 일상을 보낼 때 그들을 가끔씩 꺼내보면 얼마나 애틋하고 행복할까.

이곳에서 나의 삶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보다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그 격차에서 느끼는 감사함과는 다르다. 지난 두번의 인도여행이 '나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모험을 내 힘으로 하고있어! 그러니 나는 용감하고 대단해!' 라는 자아도취 속에서 완성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렇지만 20대 초반의 젊음이 부릴 수 있는 허세로 생각해 귀엽게 봐주기로 한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되었다. 참 다행이야. 흐르는 시간이 무색하지 않게 조금은 자라주어서.
그러나, 본질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함께 고민하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실습이 마무리되고, 여행을 하는 동안만큼은 현실을 고민하는 것은 잠시 놓아두려고한다.

흰 가운을 입고, 호주머니엔 파워내과책을 넣어두고 병원을 걷다 보면 사람들은 나를 중국인이나 네팔인 쯤으로 생각한다. 이것, 처음엔 참 불쾌한 일이었다. 나는 '코리언'임을 거듭강조해 말해주곤 했다. 그러나 어느 아침, 인도인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나는 중국인으로 오해받으면 너무 기분 나빠.'
'왜 기분이 나쁜거야?'
'음, 그건....'

중국인은 더러워서? 우리보다 못살아서? 촌스러우니까?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했나. 무슨 대답이었건 친구는 내 주장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경멸해마지않던(적어도 그렇다고 떠들어오던) 무책임한 차별과 우월주의(어떤 관계에서든 간에)를 내게서 분명히 보았다. 이번 인도행에서 얻은 큰 수확중 하나는 이곳을 '정신없지만 매력적인 여행지'에서 '결국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만난 인도인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팔고 싶거나, 사기를 치려고 하거나. 대개 둘중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 내가 만나는 인도인들은 공무원시험 학원에 다니며 밤을새워 시험공부를 하고, 취업이 되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며 울상을 짓고, 다가오는 생일에 남자친구와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어떻게 나와 다르다고 느낄 수 있을까.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결국 중국이든 네팔이든 어디든, 마찬가지. 살짝 건드리면 사라져버리는 얇은 껍데기로 스스로를 속이지 말 것.


종종 인도에서의 의사 생활을 상상해보게 된다. 분명 한국에서의 그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매일 아침 만나는 회진풍경을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환자 각자의 상황에 맞게 병력청취에서 얻을 수 있는 클루는 무엇인지, 놓친 신체진찰이나 감별진단은 없을지 매일 토론하고, 고민한다. 의사 한명이 5명 내외의 환자를 맡기 때문에 히스토리, 피지컬에 1시간 가량을 투자할 수 있다. 교수님 또한 랩 결과보다는 환자에게서 직접 얻은 정보를 더 궁금해한다. 지난 한해, 내과 실습을 돌며 마음속으로 내과는 선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진단명 000' 라는 팻말을 걸어둔 틀에 환자들을 꾸역꾸역 끼워맞추는 광경을 목격해야했기 때문이다. 실력이 있음에도 건강보험이 정해준 수가로 병원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도저히 시간이 없다는 슬픈 이유로. 우리의 의학은 환자에게 너무 멀어져버렸으며 우리는 첨단장비 없이는 아무것도 하기 힘든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내가 꿈꿔왔던 의사상을 인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 의사를 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이상이 이상으로만 그치지않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고나. 잘 품어두었다가 언젠가 한국의 여건이(보건정책이든, 보험문제든 뭐든.) 나아지게 되면 꼭 이뤄보고싶은 꿈이다. :)

대학생활 5년동안, 인도라는 알 수 없는 나라를 세번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이 좋아져버렸고, 정신을 차리고보면 언제나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의 시간도 앞으로 3일 남았다.
그곳에서 만나는 한사람한사람, 웃으며 대할 것. 부족한 영어지만, 최선을 다해 소통할 것.
어떻게 보내든 후회는 남겠지만, 어쨌거나 주어진 기회를 온전히 즐길 것.

델리의 겨울밤 공기가 글을 쓰고 있는 방 안으로 스민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참 따뜻한 밤.